タイトルが格好いい作品に、無条件に心惹かれてしまう。
たとえばフィリップ・K・ディックの『流れよわが涙、と警官は言った』であるとか、ジェイムズ・ティプトリー・ジュニアの『たったひとつの冴えたやりかた』などなど、SF作品には秀逸なタイトル、そして邦題の小説が多い気がする。
타이틀이 멋있는 작품에 무조건으로 마음을 뺏긴다.
예를 들어 필립 K. 딕의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The Starry Rift』등등 SF 작품에는 우수한 타이틀,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된 제목의 작품이 많은 거 같다.
以前も紹介した舞城王太郎さんの『煙か土か食い物』なんかも素晴らしい。
今回は、舞城さんとほぼ同時期にデビューした佐藤友哉さんの『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 鏡稜子ときせかえ密室』について語りたい。
이전에도 소개했던 마이조 오타로상의『연기 흙 혹은 먹이』같은 것도 멋지다.
이번에는 마이조 상과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사토 유야상의『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 카가미 료코와 변화하는 밀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まずもって、タイトルが格好よすぎる。
友人らとタイトルの格好いい小説選手権のような話をする際、必ずと言っていいほど本書の名前が挙がるが、さもありなんといったところだ。
제일 먼저 타이틀이 너무 멋지다.
친구들과 타이틀이 멋진 소설 선수권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본작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 당연할 정도이다.
メフィスト賞を受賞したデビュー作『フリッカー式 鏡公彦にうってつけの殺人』に次ぐ2作目であるこの小説は、要約して語るのがなんとも難しい物語だ。
一応ジャンルとしてはミステリに区分されているが、のちの佐藤さんの作風であるスリップストリーム的な要素がすでに感じられる。
메피스토 상(メフィスト賞)을 수상한 데뷔작 『플리커 스타일』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요약해서 이야기하기 무척 어려운 이야기이다.
일단 장르는 미스테리로 구분되어지지만, 추후 사토 상의 작풍인 슬립스트림적인 요소가 절실히 느껴진다.
『フリッカー式』『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はいずれも、サリンジャーの「グラース・サーガ」に影響を受けたシリーズものであり、「鏡家サーガ」と呼ばれている。
本作にも鏡稜子という鏡家のキャラクターが登場するが、主人公ポジションかと言われると返答に困ってしまう。
『플리커 스타일』『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은 모두 샐린저의 글라스 사가에 영향을 받은 시리즈로「거울가 사가」로 불린다.
본작에도 카가미료코라는 카가미가의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주인공 포지션이냐 하면 답하기 어렵다.
コスプレ、カニバリズム、殺人、謎解きと、いくつか象徴的な要素はあれど、解説で上遠野浩平さんも書いているように、そのいずれもがメインテーマというより表層的、副次的要素のようであり、じゃあいったいどういう話なの?と問われると、とりあえずハマればハマるし合わないなら合わないからまず一回読んでみてよ、と言わざるをえない。
코스프레, 카니발리듬, 살인, 수수께끼 풀이, 몇 개의 상징적인 요소가 있지만, 해설에서 카도노 코우헤이 상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 모든 건 메인 테마라기 보다는, 표층적, 부차적 요소인 거 같다. 그럼 대체 무슨 이야기야? 라고 묻는다면, 어쨌든 빠져들기 시작하면 빠져들고, 맞지 않는다면 맞지 않으니깐 먼저 한 번 읽어보라고, 얘기할 수 밖에 없다.
佐藤さんの小説としては、『灰色のダイエットコカコーラ』や『1000の小説とバックベアード』の方が好みなのだが、2000年代初頭のあの雰囲気を一番感じられるのが、この『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である。どこか鬱屈として、閉鎖的だったあの時代。その空気が間違いなくこの本には切り取られている。
사토상의 소설이라고 한다면, 『灰色のダイエットコカコーラ』나 『1000の小説とバックベアード』 쪽이 취향이지만, 2000년대 초반의 그 분위기를 제일 많이 느낄 수 있는 게 이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이다. 어딘가 울적하고, 폐쇄적이었던 그 시대, 그 공기를 틀림없이 이 책에서는 느낄 수 있다.
この本が今の若い世代の方々にどのように届くのかはわからないが、かつてのぼくには、なぜだか妙に刺さってしまった。
当時はその理由がよくわからなかったが、再読してみて、自分もどこかコスプレをしている感覚があったからかもしれないな、と思った。
이 책이 지금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의 나에게는 왠지 묘하게 꽂혀 버렸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잘 몰랐지만, 재독하면서, 나도 어딘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自分はつぎはぎのにせもので、かりそめの存在である。「本当の自分」などというものはどこにもなくて、ただすべてが何かのコピーにすぎない。
そんな感覚を漠然と抱いていたあのころの自分には、まさにこの小説はうってつけだったというわけだ。
자기는 노리개의 가짜로, 모조품의 존재이다. "진짜의 나"라는 건 어디에도 없고, 단지 모든 건 어떤 것의 복제품에 지나지치 않는다.
그런 감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그 때의 나는, 틀림없이 이 소설이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10代のころに読んだからこそ、共鳴し記憶に残った小説だと思う。
2020年代の今、若い方が読んだらどんな感想になるのか、ぜひ聞いてみたいものだ。
10대 때 읽었기 때문에, 공명하며 기억에 남았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대인 지금 젊은 세대가 읽는다면 어떤 감상이 될지, 꼭 물어보고 싶다.
- 원문
https://brutus.jp/saito_soma_00s_26/?gallery=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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